최근 들어 축하받을 일이 많이 생겼다. 한 주 간 상을 3개나 탔다. 난 지난 3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AI를 하면서 수상 실적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늘 증명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왔다. 특히, 내 모교에. 증명 이후에 오는 이유 없는 상실감, 부담감, 허탈감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증명하고 싶었다.
수상뿐만 아니라 이번 학기에는 원하는 것들을 많이 이루는 시기였다. 학기 중에는 많이 괴로웠는데, 그래도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보 같이 힘든 일들은 다 까먹은 듯하다. 힘들 때마다 블로그에 글을 쓰러 오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마저 없었다.
뭐… 이게 내 근황이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렇기에 적을 글은 많지만, 리스트까지 짜두었지만, 쓸 때가 되어서 그 주제를 보니 ‘굳이 쓸 글은 아닌 거 같네’라는 마음이라 조금 아쉽지만 꼭 써야 할 글만 쓰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적으러 왔다는 건 꼭 남겨두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증명과 함께 찾아온 부담감과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열린 것. 불과 몇 년 전의 나라면 이 상황을 바라왔겠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해냈다’라는 말도 전하기에 다소 심란해서 아무 말도 전할 수 없는 것. 어찌 보면 배가 불렀다. 누군가 보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마음을 어딘가에 전하기도 어렵다.
최적의 선택,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늘 최고의 선택은 그 선택을 한 나의 노력을 통해 최고로 만드는 것이라 말해왔지만, 막상 내가 선택할 순간이 되니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을 믿어야지 어쩌겠냐.
아무튼 내 고민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그렇기에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아무것도 없었을 때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게 정답이지 않을까 싶었다. 잃을 게 없으니 두려움이 없고, 때로는 무모한 일들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무 일도 없었기에, 그저 내 노력에만 포커싱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룬 성과가 나아가야 할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아, 이것들을 뿌리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걸으려 한다면, 난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슷한 일로 지식도 그랬다. 겨우 찾아낸 지식을 잊고 싶지 않아 같은 자료를 몇 달 동안 보고, 여러 관점으로 다르게 해석해 보고, 어떻게든 내 머리를 떠나지 않게 하려 했던 것. 그리고, 그 지식이 나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나를 지탱하는 건 노력을 하는 자신이었거늘, 성과라고 믿었던 것.
그러다가 존경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지식은 담아내고 간직하다 보면, 그것에만 연연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못 한다’는 말을 하셨을 때, ‘아!’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물론, 수학에서 다루는 정의는 연연해야 하고, 수식을 증명하거나 유도할 때 쓰여야 하는 끝점이 맞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가진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흘러가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내가 이루고 가진 것들과 공부한 것들을 지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자신감이라 할 수 있는 것들도 나왔다. 허준이라는 분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근거 있는 자신감은 무너질 수도 있다고’. 그 말에 일부는 공감한다. 시간이 지나 나의 성과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살아가면 어떨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도 답은 아닌 듯하다. 그 또한 무너질 수도 있는 마음이라 그럴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꿈도 서서히 어떠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간다. 예전에 어떠한 직업도, 어떠한 성취도 내 꿈이라 하기에는 명쾌한 정의는 아니라 했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하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다.
나중에 꿈에 대한 글도 쓰러 오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질문이 끊기지 않는 삶, 그 질문에 끝까지 답을 찾으려는 삶’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정의 중 가장 명쾌한 정의다. 야망과 에고가 한 토씨도 보이지 않는 이 꿈에 대한 정의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살아가면서 성과를 이루지 않겠다거나, 직업을 갖지 않겠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가 그럴 뿐. 그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좇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