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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할 수 없던 문제

도비(Doby) 2024. 9. 6. 21:13

날이 갈수록 내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게 스스로 보였다. 작년에 나는 이렇게까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었다. 왜 외로움을 느낄까. 물리적으로 보이는 건 혼자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공부하고 있는 분야들이 조금 더 지엽적인 분야가 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내가 원래 이런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나’라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작년에 비해서 이런 시간들의 농도가 조금 더 짙어진 것일 뿐, 늘 이렇게 살아왔지 않았던가.
 
그러면, 문제를 다시 정의해 볼 수 있다. 늘 같은 시간들을 보내왔는데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단어가 떠오르기까지 많은 경우들을 생각해 봤다. 그런데, 좀처럼 떠오르지 않다가 문득 학부연구생 첫 미팅 때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지금 교수님과 하고 있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 5월, 교수님과 처음으로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때였다. 교수님께서는 당연히 수업 때 봤던 학생이 대뜸 연구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으니 나의 히스토리를 여쭈어보셨다. ‘저는 ~~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를 해봤고, 앞으로는 ~~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그럼 어떤 길을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을 해주셨고 나는 그에 대해 대학원이라 답했다.
 
이어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은 충격적이었으며, 아직까지도 나에게 풀리지 않는 답이다.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야. 더 먼 미래를 봤을 때, 다운 학생이 생각하고 있는 길을 말한 겁니다. 가고 싶은 회사가 될 수도 있고요, 다운 학생이 본인만의 연구를 해보고 싶다면 저와 비슷한 길이 될 수도 있고요. 본인이 가고 싶은 길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목표가 있나요?” (이 대화가 몇 달이 지나 내가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오고 간 의미는 정확하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난 눈앞에 대학원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에 대한 걱정 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충격을 먹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길을 선택한 뒤로 사실 구체적인 목표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 뒤로 종종 시간이 있을 때, 고민을 해봤다. “난 어떤 길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할까,” 스스로에게 창피하기도 했었다. 너무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만 고민하며 살았나.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애초에 난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도 그랬다. 음악을 할 때, 내가 구체적인 미래의 목표가 있었던가, 무책임하게도 없었다. 음악을 할 때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앨범에 대해 ‘프로젝트 계획, 그에 대한 메시지, 트랙 구성, 스토리 텔링, 작업, 또 작업, 무수히 많은 버릴 트랙들, 버리고 다시 작업, 레퍼런스 분석, 그리고 또 작업…’ 이게 전부였다. AI를 시작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해 ‘논문 리뷰, 논문 리뷰, 가설 설정, 구현, 실험, 구현 실수, 재실험, 가설 실패, 원인 분석, 논문 리뷰, 논문 리뷰…’ 항상 눈앞에 놓인 문제를 풀고 싶어 했다.
 
그래서, 교수님의 질문에 종종 고민을 해봤던 그 끝에는 “제가 풀고 싶은 문제가 있는 곳에 가고 싶습니다.”라는 추상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에게는 제일 구체적인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다. 내 답변이 이렇듯이 “어떤 큰 문제를 정의하거나, 질문이 생기면 그에 대해 고군분투하며 풀어내거나 알아내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며, 하고 있는 일이다.
 
이게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면, 요즘 나는 내가 원하는 이 일을 못 해내고 있는 거 같다. 문제를 쫓아가야 할 전의를 상실한 것과 같은 슬럼프 비슷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에 집중할 수 없는 잡음들이 많아지는 듯해서 그렇다. “이걸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논문이 내가 이해한 게 맞을까, 내가 알아낸 게 최선의 방법론일까, 실패하면 어떻게 또 헤쳐나갈까,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을까” 이런 내적인 잡음들과 주위에 마음을 갉아먹게 하는 외부의 잡음들에 의해서 점점 원초적인 나의 목적과 멀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순간들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기 때문에 잠깐 모든 것들에 동떨어진 시간들이 많아져서 외로움을 느낀다.
 
정리하면,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내 목적을 상실하는 데에서 온다고 정의할 수 있었다. 이런 잡음들을 없애려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이 시도들은 항상 머릿속에서 정신을 개조하는 거처럼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종류의 시도들이었다. 그래서, 며칠 안 가서 늘 실패했다. 자는 순간에는 내일 꼭 이렇게 살아야지 하더라도, 눈을 뜨면 일어나기 싫은 생각이 선수 쳐서 마음다짐을 까먹듯이.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게 최고다. 늘 내가 풀어야 하는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이것을 위해서 지금 당장의 나는 무슨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의해서 시도를 하는 것, 이것만이 내가 외로움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며, 내 삶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이 목적이 맞는지는 나도,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모든 걸 평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늘 풀고 있는 문제가 있길 바란다.

구체적이고, 긍정적이며, 늘 궁금한 것들이 있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