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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념이 가져온 선과 악

도비(Doby) 2026. 2. 15. 23:43

책을 읽기도 시작하기 한참 전에 사둔 책을 꺼냈다. 난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는 한다. 읽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언젠가 읽겠지’의 기저가 더 강하다. 이번 책도 이런 식으로 사두었다가 방 한 켠에 조용히 꽂혀있었다. 책 읽기를 마음 먹은 뒤로 새로운 책을 사기보다는 사두었던 책을 읽어보고자 했다. 이번 책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처음 보면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감이 오지 않는데, 다 읽고 나서 다시 이 제목을 다시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의미가 있는 게 있을까, 사실이 존재할까’

사실 이것은 책을 보고나서 든 생각일 뿐, 더 크게 느낀 것은 따로 있다. 소설은 한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한다. 많은 방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데,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를 알게 되고 이 과학자의 태도에서 본인이 찾고자 하는 답은 여기에 있다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자의 일생을 톺아보는 논픽션 이야기이다.

초반부를 읽으면 나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존경하게 된다. 좋은 말들이 있어서 따로 필사를 해둘 정도로 그의 태도에서는 배울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의 직업은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새로운 어류를 찾고 이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그가 겪은 일화 중에는 오래 수집한 물고기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에서 어느 날 자연재해에 의해 물고기들을 담은 병들이 깨지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의 찢어진 살갗들로 좌절을 겪을 만한 상황에서도 그는 담을 수 있는 물고기들을 하나씩 잡아 다시 이름표를 바늘로 꿰메었다는 이야기이다. 그가 쌓아온 적어도 몇 년, 몇 십 년의 아카이브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어찌 그리 다시 주어담을 수 있었는가는 나로 하여금 소설에 몰입하도록 했다. 나도 주인공처럼 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설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p. 120)”

이처럼 소설의 주인공이 나 대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사명에 대한 원동력 비스무리한 것들을 찾아준다. 그런 식으로 이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화들을 전개하는 내용으로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조금 더 읽어서야 이게 답인가 싶은 내용도 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p.146)”

긍정적 착각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이런 착각이 좋다라고 밝혀진 연구들도 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서는 그닥 좋은 것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 연구들도 있었다. 즉, 이것도 명쾌한 정답은 아니었다. 아마 주인공도 그리 느꼈던 거 같다. ‘그래서, 정답이 무엇이냐?’라고 내가 의문을 품기 시작할 때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추악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제인의 살인은 물론이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우생학’ 때문이다. 그의 믿음 때문에 피해를 받아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후반부를 이루는데, 정말 충격적이다.

한 사람의 믿음, 신념이 올곧아도 너무 올곧아있기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초반부에는 그의 이런 마음을 존경하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굉장히 역했다. 한 편으로는 신기했다. 내가 한 인물을 생각하기를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책으로 몸소 느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더 나아가 후반부에서는 어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밝혀낸 연구들을 이야기 하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과 신념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한 통쾌한 연구가 있었음에 속이 시원했다.

이 책을 읽은지는 사실 오래 되었다. 거의 2주 전에 다 읽고 이제서야 독후감을 쓰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읽었던 당시의 어떤 감정들이 조금은 휘발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소설을 읽고나서 가장 굵직하게 느낀 것들은 남아있는 듯하다. 첫 번째로는 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역겨움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겪을 때의 신비로움, 두 번째는 신념에 대한 것이다. 사실 나는 신념이라는 것이 최근 들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이러면 될 거야, 이러는 것이 정답이야'라고 굳게 믿을 수 있는 마음은 소중하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너무 과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정말 최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이랬으니까, 너도 그래야 해'라는 태도 말이다. 이 태도는 정말 중요하다. 연구를 하는 입장으로서 앞으로 많은 후배를 만나게 될 때도 말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동조하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다만, 신념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의 독후감은 여기서 마친다. 빨리 다음 책을 사서 읽고 싶은데, 양심에 찔린 나머지 이 글을 쓰지 않는다면 책을 못 살 거 같아 빨리 쓴다. 다음 책은 정말 궁금한 <스토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말 하나를 발췌한다면,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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