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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회고록

2023년 회고, 만들어라

도비(Doby) 2024. 2. 25. 16:50

✅ Intro

2월 말에 가까워지면서 개강일도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게 회고록이 늦게까지 미뤄질 거라 예상은 못 했다. 개강을 하기 전에는 써두어야 2023년에 대한 기록들이 그 당시의 뉘앙스를 살릴 수 있을 거 같기에 한 해가 끝나고, 2개월이 지나 늦겨울을 맞이하고서야 쓰게 되었다. 그리고, 회고록만큼은 더 잘 기록하기 위해서는 편한 어투로 쓰는 게 맞는 거 같다. 사실 초안을 종강 직후에 쓰고 있었는데 그때는 다소 형식적으로 쓴 느낌이 있었고, 2023년이라는 한 해에 대해서 다소 비관적인 마음으로 쓰고 있었다. 연초 일정들이 시작되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서 끝맺음을 확실하게 해 둘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연초 일정들에 대해서는 아직 안 끝난 부분도 있고, 단순히 2023년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싶기에 12월까지의 기록을 되감아보고자 한다.


✅ 군대에서 반년

📄 첫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던 때 (1월)

전역시기가 6월 말이었어서 지난 한 해의 반은 군대, 나머지 반은 사회에서 보냈다. 23년 1월에는 첫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이론은 좋지만...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첫 성능 테스트에서 50%의 성능에 충격을 먹고, 욕심 내어서 버전 2.1까지 만들어가며 성능 90% 이상을 기록했던 기억이 난다. 개와 고양이 이미지를 분류하는 단순한 이진 분류의 인공지능이었다.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된 Batch Normalization, Dropout, L1, L2 Regularization과 같은 테크닉들도 있었다. 처음 논문을 리뷰하게 된 것도 이 프로젝트 때문이었으며, Batch Normalization을 이해하려고 첫 논문을 2주 동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이해하고(?) 난 뒤에 '이거 이렇게 하면 더 잘 나오겠는데?' 하면서 버전 2.1을 만들었었다. 사지방이 내 작업 환경이다 보니 코랩에서 제공하는 GPU를 다 쓰고 나면, CPU를 통해서 학습을 시켜야 했는데 한 번 학습시키는 것도 하루 전체 아니면, 3일까지 걸렸던 기억이 난다. 또 자고 일어나면, 컴퓨터가 꺼져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번엔 또 왜 그럴까~~, 내가 뭘 잘못했니'하면서 어린이 타이르듯 웃어넘기려 했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련 글도 블로그에 몇 편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한 10편 정도 썼나?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엄청 희망적인 모습들이 떠오른다. 밖으로 나오니 알게 되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그로부터 현실이라는 벽들에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줄곧 했다. 때로는 사지방에서 알게 되는 것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기뻐하던 그런 모습들이 그립다.

📄 잠시 멈추게 되었을 때 (1) (2월)

첫 프로젝트 관련 일정들이 모두 끝이 나면서 거기에 맞게 휴가를 계획했었다. 휴가를 나가면, 제일 반가운 곳은 항상 내 방이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제일가고 싶은 곳은 바다도 아니고, 형산강도 아니고, 내 방이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모든 창작물들, 음악이든 코드든 모두 작은 내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휴가를 나가서 프로젝트가 끝났으니 방에서 다음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음악을 만드는 미디 프로그램, 큐베이스가 바탕화면에서 보였고, 홀린 듯이 들어가 봤다. 한 프로젝트 안에 트랙들이 엄청 많이 쌓여있었고, 트랙마다 여러 이펙터를 원하는 만큼 노브를 돌려 먹힌 꽤 오래된 내 흔적들이 보였다. '오 뭔가 많이 했네?'라는 단순한 생각뿐이었고, 남은 휴가를 잘 보내다가 부대를 복귀해서 다음 계획들을 곧바로 실행하자니 공부할 게 엄청 많아졌었다. 그 당시에 Object Detection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 Task의 베이스라인이 되는 R-CNN, YOLO를 공부하려고 했다. R-CNN을 먼저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Selective Search, mAP, Non-maximum Suppression 등 다양한 개념들을 공부해야 하고, 남아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왜 이리 할 일이 많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 재밌는 걸 원했다. 그러자 휴가를 나갔을 때 프로젝트 창을 열어봤던 기억이 났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휴학 1년을 생각했다. 그 기간 동안 재밌는 걸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코딩, AI는 전역 전까지 잠시 접어뒀다. (가끔 백준은 했던 거 같다.)

 

남은 4개월 간은 음악 공부를 다시 하며, 이후로 외박을 나갈 때마다 집 가서 곡을 만들어 왔다. 사실 재밌다는 기분보다는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질까?'라는 생각뿐이었고, 사실 이마저도 즐기지는 못 했다. 

📄 잠시 멈추게 되었을 때 (2) (3월)

단지 휴학 1년을 계획했었기 때문에 완전히 음악의 길로 다시 간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3월에는 병장이 되었고, 오히려 이 맘 때쯤에 군생활을 더 즐기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전까지는 계속 백준, AI가 1순위였던 거 같고, 짬도 차버렸으니 재밌는 것들을 많이 찾았다. 외출을 나가면 꼭 영화 한 편씩 보고, 카페에 가서 드는 생각들에 대해서 정리한다고 노트를 끄적끄적 적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군복 입고 혼자 카페에서 무언가 쓰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참 우스꽝스럽다. 뭘 그리 생각할 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웃기다. 이 맘 때, 코드쿤스트의 Remeber archive라는 앨범이 나왔는데 1번 트랙부터 너무 내 취향이라 한동안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유튜브 뮤직에서 2023 Recap으로 많이 들었던 음악들을 알려주는데 1순위가 1번 트랙이더라. 이 당시에 르세라핌도 엄청 좋아했다. 

 

즐기자가 제일 우선순위였던 때인 거 같다. 이 당시에 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다.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쉬어가던 기간이 아닐까 싶다.

📄 러닝을 시작했을 때 (4월)

무슨 이유에서인지 러닝을 시작했다. 전역 2개월 앞두고 다이어트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 그냥 좀 뛰고 싶었다. 나이키런으로 측정을 하는데 페이스가 좀 뛰어났다. '어라 나 좀 잘 뛰나?'라는 생각을 하고 계속 뛰었지만, 나중에 절전모드가 페이스 측정하는 데 있어서 오류를 주고 있다는 걸 알았고, 제대로 측정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뛰고 난 후 내 페이스를 봤을 때 처참하더라. 하지만, 그런 오류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 러닝을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을 거 같다. 착각 덕분에 '아! 나 잘 뛰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거 같고, 사회에 나와서 유일한 취미(?)로 자리 잡았다. 군생활에서 제일 잘한 거라 생각한다.. 내가 운동을 하다니. 어플에서 제공하는 한 달 100Km 챌린지도 해보고, 군생활 끝무렵 새로운 낙이었다. 일과 끝나면, 후임들이랑 바로 뛰러 나가는 게 참 좋았다. 

 

러닝을 시작하던 이 시기에 들었던 생각은 아니고, 몇 개월 전에 뛰면서 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 빨리 달리려 한다거나, 오늘 내 페이스 끝장낸다라는 식으로 달리면 항상 3km쯤에서 엄청 힘들어하거나, 멈춰야 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내 호흡에 맞춰서 천천히 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리는 날은 느리게 시작한 페이스가 나도 모르게 더 빨라져있고는 했다. 이런 현상에서 가르침이 되었던 거 같은데 조급한 마음으로 일을 헤쳐나가기 시작하면, 결국에 멈춰버리는 거 같다. 지금 내 상황을 더 인지하고,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점점 수월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조급함이 가끔은 도움이 될지라도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스스로를 만들면서까지 조급해하진 말자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내 속도를 찾고, 가다 보면 내 속도는 더 빨라져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때 (5월)

조금씩 정리를 해가던 때였다. 마지막 근무, 마지막 순찰, 마지막 당직, 마지막 외출... '이러다 진짜 전역하겠다'라는 웃기면서 이상하게 슬픈 생각들을 자주 했다. 괜히 어디 가서 작업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갈래'하고 가서 '이것도 이제 하고 싶어도 못 하겠구나'하며 마지막을 즐겼다. 계속 정리하고, 준비하기 바빴던 거 같다. 전역일은 6월 19일이지만 아껴둔 14박 15일로 6월에 바로 사회로 나가는 거라 사실상 마지막 달이었다. '나가면 어떤 곡들을 만들까?'가 늘 하던 생각이었다.

 

별 일 없이 지나갔다. 늘 뛰고, 늘 생각하고, 늘 그랬듯이.

📄 전역을 하면서 다시 방향을 잡았을 때 (6월)

6월이 되자마자 나온 휴가 15일 동안 방에서 음악 작업만 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했다. 15일 내내 작업을 하면서 재밌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15일 내내 머리만 아팠다. 복귀 전 날에 밤을 새우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단을 내리려면 내 마음을 인정해야 했다. '더 이상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너무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고, 결단을 내린 뒤 바로 카페로 갔다. 카페로 가서 복학 준비를 했다. 전역 3일 전에 복학을 결정한 만큼 복학 전에 무언가 하고 학교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근까지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있으면, 종종 나에게 묻는다. '이제 음악은 안 하는 거야?', '가끔 생각 안 나?'라고 물을 때, 마음 한편에 남아 있을까를 되뇌어 보는데 이젠 없는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가끔 작업물을 들으면, 추억 회상 정도로 남아있다.


✅ 사회에서 반년

📄 대회에 나갔을 때 (7월)

전역한 당일부터 바로 공부를 시작했던 거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복습부터 시작을 했다. 6월에는 무언가를 하고 학교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회를 나가기로 결심했다. 대회라면 AI를 만드는 시작부터 끝을 경험해 보는 프로세스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나간 대회는 Tabular data를 다루는 대회였고, 트리 기반 모델인 XGB를 사용했었다. 돌이켜 보면, 서투른 부분이 많으면서도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특히, 하이퍼파라미터를 계속 조정하면서 성능을 기록했던 노션 페이지를 보면 제출할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면, 새벽이라도 다시 학습을 돌려서 제출해서 점수를 확인한 적이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술자리를 하고 돌아온 새벽 3시 반에도 몇 번 더 돌려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침 7시에 잤던 기억이 난다. 이때 당시를 회고해 보면, 그냥 끈기 밖에 없었던 거 같았다. 결과적으로, 첫 대회에서 68명 중 28등을 기록했던 것으로 만족했었다. 또 기억에 남는 건 XGB의 기반이 되는 Gradient Boosting이라는 모델이 인문학적으로 멋있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오차를 다음 트리에서 학습한다는 게 살짝 인간도 늘 실수로부터 배우고 그런... 나만 느꼈어? 나만 느꼈냐고)

 

7월까지가 2023년의 전반전으로 기억에 남고 있다. 8월부터는 새로운 시작과 환경으로 갔었고,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은 '이게 정말 다 반년 안에 일어난 일들인가'가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다.

📄 내 길을 이제야 걷기 시작했을 때 (8월)

8월부터 9~10월까지 했던 프로젝트 경험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7월 즈음에 인스타를 보다가 다이브라는 곳에서 프로젝트할 사람을 모은다는 게시물을 봤다. 그리고 거기엔 'Medical AI'가 적혀있었다. 의료 인공지능은 내가 제일 하고 싶은 분야였고, 사실 첫 프로젝트도 이론 책 한 권 읽은 상태에서 바로 의료 인공지능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던 터라 개와 고양이를 분류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다. '이거 안 하면 무조건 후회한다'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대회 신청서를 작성해 둔 상태라 고민을 엄청 많이 했었다. 2개를 동시에 하는 건 많이 힘들 거고, 팀원 분들한테 피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많이 망설였다. 끝내 망설이다가 '그럼 언제 의료 인공지능 할 건데'라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제출했고,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의 마지막은 11월 학술대회로 끝을 맺었고,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그 1번, 세미나 1번, 논문 1번, 깃허브 1번 등등 너무 많이 다루었어서 여기서까지 더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거 같아서 생략하겠다.

 

그래도 기억에 많이 남는 건 복학할 때쯤이 되어서 기숙사에 입사를 한 상태였는데 당시에 DB를 구축하고 있었다. 구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엄청 많아서 갈 곳은 없었고, 24시간 카페 가서 새벽 2~3시까지 매번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첫 의료 인공지능이라 해서 내 모든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었다. 정말... 하얗게 불태웠어.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참여했던 프로젝트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던 건 '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크다. 2021년 2학년 1학기를 마쳤을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주변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백준도 그렇고, AI도 그렇고 외롭다기보다는 나도 아직 주변에 누군가와 무언가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혼자 공부했던 거 같다. (어차피 군대라 뭘 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서 8월의 활동이 의료 인공지능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첫 팀 프로젝트라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제발 내가 어떤 피해는 안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었는데 팀원 모두 으쌰으쌰 분위기로 잘 마무리해 줬었다. 암튼 새로운 경험도 경험이지만, 우리 팀 말고도 Medical AI 내에 다른 팀들과도 회식, 세미나, 학술대회 등 여러 일정들을 통해서 친해졌었는데 항상 이 무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정말 많이 했다. 멘토님, 우리 팀원들, 형, 누나들 다 너무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된 거 같아 다이브에 참여하게 된 게 작년 했던 일들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근데 나 빼고 다 서울에 살고 있어서... 아쉽... (이때부터 상경에 대한 생각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게 아닌가...)

📄 학교를 돌아와 현실을 마주했을 때 (9월)

9월도 여전히 다이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복학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8월 말부터 기숙사에 입사를 해서 살고 있었다. 돌아온 학교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계속 마주하는 사람들, 과제, 시험 일정, 시끄러운 대화 정말 나랑 안 맞는 곳 같다고 느꼈다. 2년 만에 돌아와서인지 한동안은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었었다. 당시에 편의점 알바도 했었다. 

 

이때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군대 가기 전 말아먹은 학점에 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중간 기말 나누어서 2가지 실험을 했다. 중간은 궁금한 것들을 기반으로 '학술적 탐색'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기에는 그렇지만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 때도 엉뚱한 질문들을 했던 걸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까. 참 민망하다. 그래도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 아닌가 싶었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외우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끝내 '아 이거네!!'같은 감탄을 했던 기억들이 저번 학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기말은 형식적으로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를 했다. 족보에 의존을 많이 했고, 오로지 성적을 위한 공부를 했다. 성적은 둘 다 비슷하게 나온 듯 하지만, 기말 범위가 많았기도 했었고, 중간 때 성적이 더 잘 나온 거 같았다. 결과적으로, 학점을 4.35로 챙기면서 과 5등까지 했다. (처음에 보고 진심으로 전산오류인가 했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도 재밌고, 재밌게 공부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위 2가지 실험을 했었던 이유가 있었다. 10월, 11월 기록에 쓸 내용이기도 하지만, 나는 다이브 활동을 하면서 내 길이 뚜렷해졌다고 생각했다. 그 길에는 대학원이 있었다. 대학원을 가려면 좋은 학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학점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학점을 높이려면, 기존의 공부 방식(질문과 흥미 기반)이 맞을지 학점을 위한 공부가 맞을지를 알고 싶었다. 정말 다행히도 전자의 방식이 재밌고, 더 성적이 잘 나왔던 걸 보면 앞으로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끝과 동시에 새로운 불안이 찾아왔을 때 (10월)

10월에는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다이브 오픈 세미나 때문에 서울을 다녀왔었다. 이 날은 내가 발표라서 벌벌 떨다가 정신없이 후다닥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발표 전에도 건물 옆에 카페에 가서 계속 시뮬레이션했던 투썸이 기억난다. 끝나고, 서울역에서 다시 울산으로 가는데 앞으로도 늘 그렇겠지만, 서울에서 울산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는 건 매번 기분이 이상하다. '난 언제 서울로 올까?' 하면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서울의 반짝 거리는 건물들을 벗어나 새까만 풍경이 될 때까지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활동이 마무리되고, 9월부터 했던 생각은 불안이 되기 시작했다. '나의 학벌, 학점으로 누가 날 데려갈까'라는 고민을 시작으로 학기 내내 그렇게 살았다. 이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내내 하면서도 반대로 '그런다고 안 할 거야?'라는 반박을 하고는 했었다.

 

10월에는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났으며, 그저 정신이 없었다.

📄 학술대회와 이겨내야 할 때 (11월)

멘토님이 활동 초창기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학술대회까지 나가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 말하셨다. 그 당시에는 학술대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프로젝트를 잘 끝내는 데에 집중했다. 세미나로 끝이 나면서 학술 대회 일정이 되었는데 논문을 써서 포스터 발표까지 하는 게 프로세스였다. '내가 왜 논문을..?'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었고, '내가 써도 되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2쪽 분량이고 큰 난이도를 요구하지 않았던 거라 쓸 당시에는 시험기간이기도 했고, 빠르게 써서 제출했었다. 

 

그리고, 멘토님께 진로 고민에 대한 조언을 요청해서 서울 올라가서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엔 팀원들도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울산으로 내려왔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너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울산을 돌아와서는 그게 초기화라도 된 듯 다시 불안해졌었다.

 

경주에서 학술대회 발표까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 건 '이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스스로에게 증명을 해주는 거밖에 없다'라 생각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래서 11월은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으로 파이토치를 속성으로 공부했다. 프로젝트에 사용하고 싶은 아키텍처를 직접 구현해 보면서 겨울 방학에 도전할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를 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다 끝난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상태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한 만큼 2023년에 일어난 일도 아니기에 따로 Description을 준비 중에 있다.

📄 여전히 정신없을 때 (12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11월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다가 순식간에 기말고사 준비 기간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12월 달은 정말 별 일 없이 지나갔다. 별 일이라면, 12월 초에 몸살 난 거..? 계속 시험공부를 하다가 시험공부가 하기 싫어지면, 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계속 찾아봤었다. 

 

여기까지가 내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2023년에 대한 기록이다. 회고록이 쓰기 어려운 이유는 어떤 날 썼다가도 '아 맞아, 이것도 꼭 써야 하는데' 하다 보면 계속 수정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최대한 많은 걸 남겨두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이겠지. 

 

물론, 생각나는 것들도 있지만 쓰기 싫은 부분은 쓰지 않았다. 회고록의 성격과 거리가 먼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서인 듯하다. 암튼 이렇게 첫 복학 학기를 잘 마쳤다.


✅ Outro

어쩌면 회고록을 쓰는 이유는 이 Outro 때문이다. 난 작년 한 해 중 내 회고록을 보고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늘 걱정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그러니 하던 대로 하자.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위안을 받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당시를 돌이켜봐도 항상 걱정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실제로 가져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회, 프로젝트, 학부생 논문, 내가 2022년에 상상할 수 있었던 것들일까. 결코 아니다. 

 

2023년에 대한 코멘트도 2024년을 살아감에 있어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 분야에 들어온 뒤로 나에게는 '틀'이 하나 생겼다. 이 틀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넌 안돼'라고 내 현실과 위치를 참혹하게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넌 아직 아무것도 몰라'라고 말하며 내 무식함을 과감하게 드러내준다. 이딴 나약한 마음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최근에 끝낸 프로젝트에서 답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난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결론을 중심적으로 생각했었다. 이 프로젝트가 아니고서도 늘 그랬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하는 내내 나를 괴롭히고 있더라. 아직 이 프로젝트의 결론이 나진 않았다. '난 무엇에 내 초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근데 그게 과정인 거 같더라. 

 

내가 언제부터 결과를 내고 좋은 결론만을 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걸 만드는 사람이고, 단지 그걸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지막에 inference 파일 만들어서 실행시킬 때가 가장 기뻤었다. 실력은 늘어났는데, 왜 더 멍청해진 거냐. 그러니 올해는 창작자, 제작자, 개발자로서 만들어가는 과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위해서 더 공부하고, 더 질문하고, 더 오류내고, 더 해결하고 그런 한 해였으면 한다. 

 

당연히 내 미래가 걱정되는 것, 불안한 것 늘 그랬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런 것들 때문에 내 목적이 흐려지지 않는가. 그러니 더더욱 현실과 타협하지 마라. 언제 내가 현실과 타협했는가, 현실은 좌절만을 줄 수 있는 덩어리 그 자체다. 지금까지의 길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만들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계속 만들어라. 어딜 가게 되든지 간에 거기서도 만들어라.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AI 밖에 없다. 계속 시도하고, 즐기고, 만들어라. 그 세상에 빠져 살아라. 계속 만들다 보면 느끼던 불안과 현실도 항상 어느 정도 해결되어 있었다. 이런 해결은 알아서 따라온다.

 

내가 2024년에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내가 가져야 할 초점은 '그저 만드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마지막은 2023년 제일 많이 들은 노래, 고생했다 2023년도. 2024년은 웃을 일 많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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